국립공원 계룡산이 신음하고 있다.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대규모 온천단지가 조성되고 있고 박물관을 짓는다며 산중턱까지 마구 파헤쳐 지고 있다.북한산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도로 건설 문제가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는 반면 계룡산을 가로지르는 국도는 소리 소문없이 건설되고 있다.
대전과 충남 공주시의 경계를 벗어나 국립공원 계룡산 동학사 지구로 접어 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장군봉이다. 계룡산을 찾는 사람들의 약 85%가 동학사 지구를 통해 계룡산을 접하고 있으니 초입의 장군봉은 계룡산의 얼굴인 셈이다.
지난 달 25일 이 곳을 찾았을 때 소문대로 계룡산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장군봉 아래 중턱엔 짙푸른 녹음 대신 콘크리트와 크레인이 흉물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난 2월부터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충청남도는 청운재단으로부터 400억원의 민자를 유치해 1만7000여평 부지에 자연사 박물관을 짓고 있다. 재단측은 2000년 초 지석골을 사이에 두고 동학사 계곡과 장군봉 생태계의 교량적 역할을 하는 부지에 소나무,참나무,벗나무 등 5000여 그루의 나무를 잘라 내고 터닦기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허가 과정에서 뇌물 수수 문제등이 불거지면서 사업이 중단됐고 그 후 2년여만에 다시 공사가 재개된 것이다.
박물관 공사장 바로 아래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일대에는 호텔과 여관,목욕탕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7만2000평에 이르는 이 지역은 1985년 온천이 발견된 이후 집단시설 지구로 지정돼 개발이 허가됐다. 이후 사업이 진행되다 사업주의 부도로 10여년 넘게 방치된 끝에 최근들어 박물관 공사와 함께 다시 개발 붐이 일어난 것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 부설 시민환경기술센터 최충식 기획실장은 “집단시설지구로 지정된 부지가 있는데도 국유지에 새 박물관을 짓는 것은 공익성을 빙자해 국립공원을 값싸게 개인소유로 만들고 지가상승으로 막대한 개발 이익을 얻으려는 음모”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청운재단측은 “계룡산의 생태계를 연구해 멸종위기 식물과 동물을 보호하고 복원할 수 있는 연구를 할 계획”이라며 “주변조경도 장기적으로 사철꽃길,야생식물원,곤충관,수목원,야생약초원을 조성해 한 차원 높은 환경 교육현장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갑사지구 등산로 입구에는 짓다만 건물 두 채가 흉칙하게 서 있다. 갑사의 땅을 임대해서 모텔과 유스호스텔을 짓는 공사가 진행되다 사업자가 부도를 내면서 15년 넘게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갑사지구 주차 관리를 하고 있는 김모씨(62)는 “관광객들마다 한마디씩 안하고 가는 사람들이 없다”면서 “건물을 하루 빨리 완공하든지 뜯어 치우든지 해야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또 갑사지구는 물론 동학사 지구 계곡들은 진입로 주변 수백여 곳의 식당과 각종 접객 업소들이 쏟아놓는 오·폐수로 인해 오염이 심각한 상태다. 올 여름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지만 지난 봄만 해도 계곡에는 돌마다 곰팡이가 피고 악취로 인해 근처를 지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계룡산 도덕봉과 동월계곡을 가로 지르는 국도1호선 두마(논산)∼반포(공주) 구간의 공사도 눈앞에 두고 있다. 계곡 일부에 교각 건설을 제외하고 전구간을 터널로 건설한다는 환경영향평가절차를 마치고 환경부 공원위원회와의 협의 절차를 남겨 두고 있다. 건교부측은 공주∼논산∼대전간의 물류비용 절감과 교통 흐름의 원활함을 위해 국도 1호선 개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공주∼논산간에는 이미 지방도와 국도가 건설돼 있는 상태며 통행량도 많지 않아 국립공원을 훼손하면서까지 국도 1호선을 신설하는 것은 예상 낭비”라고 반박했다.
육군본부는 국립공원 구역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바로 경계 지역에 체력단련장이라는 이름으로 91년과 97년 36만평과 17만평 규모의 골프장 2개를 만들었다. 대전환경연합 최 실장은 “군 간부들의 체력단련시설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계룡산 자락의 상태계를 파괴시키는 곳일뿐”이라며 “더욱이 군골프장은 법망을 피해 민간인들로부터 수익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육군본부는 계룡산 자락과 인접해 있는 대전 유성구 자운대에 9호 규모의 골프장을 추가 건설하고 있다.
통계 수치상으로도 계룡산의 현실은 그대로 드러난다. 국립공원은 개발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는 자연보존지구와 자연환경지구,숙박시설과 음식점 등이 들어설 수 있는 취락지구와 집단시설 지구로 구분돼 있다. 전체 국립공원의 평균 취락지구와 집단시설 지구의 면적이 0.8%와 0.2%에 불과하지만 계룡산은 취락지구는 전체 면적(6만4683㎢)의 1.7%,집단시설지구는 1.1%를 차지할 정도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윤주옥 사무국장은 “국립공원들의 용도계획은 개발중심적 사고가 팽배해 있던 80년대에 대부분 수립됐고 30년이 지난 현재 지자체들은 당시의 계획대로 시설 허가를 내주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시대가 변한 만큼 공원계획을 전면 재조정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주대 생명과학과 조삼례 교수는 “계룡산은 월출산을 제외하고 면적이 가장 작지만 대도시 인근에 위치 수요가 많은 탓으로 각종 개발은 다른 국립공원지역을 압도하고 있다”면서 “야생고양이들이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올라서고 텃새인 꿩조차 보기 어려울 정도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주=맹경환기자 khmaeng@kmib.co.kr
|
|
